컬럼 생명의 기운 가득한 새해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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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9-03-17 14:48 조회 447 댓글 0본문
생명의 기운 가득한 새해가 되었으면…
유달랐던 지난여름의 폭염도 물러나고 이제 자연은 긴 겨울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자연을 거스르며 문명을 일궈낸 인간사회는 한겨울에도 여전히 북적거리고 아우성치며 소란하다. 자연과 맞서느라 지치고 피폐해진 인간의 몸, 즉 자연으로서 생명을 돌아볼 때다. 혹한을 견뎌낸 나무가 기어코 연한 새순을 틔워내듯이 긴 겨울이 생명 회복과 치유의 시간이 돼야 한다.
“온 하늘과 온 땅이 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있을 때 갓 창조된 오직 하나의 여자인 하와가 너울 밑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였으니….”
단테의 ‘신곡’ 연옥편 제29곡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에 머물던 하와가 뱀의 유혹으로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낙원에서 추방됐던 인류사의 사건을 단테가 돌이켜보는 대목이다.
단테는 “그녀가 믿음이 두터워 그 밑에 머물러 있었던들…”이라며 하와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어 인류가 아름다운 낙원에서 영원히 살 기회를 잃었음을 한탄한다. 그는 “그때 밝은 대기를 뚫고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오매 그 달콤한 멜로디는 내 가슴 속에 하와의 돌이킬 수 없는 무모함에 대한 강렬한 의문을 불러일으키더라.”라며 그런 아쉬움을 이 책에서 드러낸다.
서구 문명사는 자연에 대한 저항과 불복종에서 출발
알려져 있다시피 창세기 3장 7절은 선악과를 잇달아 따먹은 하와와 아담이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다는 대목을 그리고 있다.
필자가 단테의 ‘신곡’과 창세기의 저 장면을 소환하는 것은 인류사, 좁게는 서구의 문명사가 자연에 대한 저항과 불복종에서 출발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와가 너울 밑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했다는 것은 다른 생명과 달리 인간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부터 자연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뭇 생명들은 자연에 복종하고 순응하면서 살아간다. 생육과 번식의 과정이 그러하다. 다시 말해 뭇 생명의 교합이 자연의 질서에 따르지만, 이성적인 인간은 동물적인 복종과 무지의 너울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충동과 의지에 따라 교합하고 번식해나간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렸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갖게 됐음을 일러준다. 자연의 질서에 복종하지 않고 저항한 결과다. 인간이 땅에 엎드려 살지 않고 두 발로 우뚝 서서 직립 보행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도 자연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직립 보행의 결과, 인간 암컷은 배란기를 은폐함으로써 수컷들이 번식의 시기를 가늠하지 못하게 했다. 거기에 더해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리기까지 했다.
혹자는 이런 사정 때문에 수컷들이 번식의 시기를 알고자 그토록 안달하는 것이며, 요즘 극성을 부리는 몰카 범죄를 비롯해 치맛자락을 들춰보고 싶어 하는 관음증이 여기서 비롯됐다고 추정한다. 한편으로는 인간은 육아의 기간이 길기 때문에 암컷이 수컷을 오랫동안 붙잡아두기 위해 배란기를 숨겼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암수 모두 치열한 생존 전략을 펼치며 이 땅에 살아남고자 애써온 것이다.
이제 긴 겨울, 생명 회복과 치유의 시간이 되어야
그런 점에서 인류사는 자연에 저항하면서도 바로 그 자연 속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쳐온 여정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저항과 불복종에 몰두하느라 자연에서 너무 멀어졌는지 모르겠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고투해온 오랜 역사가 저만치 물러나버렸다. 지난해 방한했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한국사회를 두고 ‘집단적 자살사회’라는 표현을 쓸 정도가 됐다. 남녀가 서로 이성을 혐오하는 여혐과 남혐의 현상이 사회 여기저기에 퍼지는 것도 우려를 낳는다.
유달랐던 지난여름의 폭염도 물러나고 이제 자연은 긴 겨울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자연을 거스르며 문명을 일궈낸 인간사회는 한겨울에도 여전히 북적거리고 아우성치며 소란하다. 자연과 맞서느라 지치고 피폐해진 인간의 몸, 즉 자연으로서 생명을 돌아볼 때다. 혹한을 견뎌낸 나무가 기어코 연한 새순을 틔워내듯이 긴 겨울이 생명 회복과 치유의 시간이 돼야 한다. 그런 생명의 기운이 새해에 우리 사회에 차고 넘쳐 모든 사람이 기쁨과 행복 속에 살아가길 기원해 본다.
글 | 정천기 건국가족 편집위원
건국대학교 국문학과(82학번)를 나왔으며, 연합뉴스 문화부에서 대중문화, 미디어, 문화정책, 문학, 종교 분야 취재기자로 두루 활동했고 문화부장을 지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합뉴스 기획조정실 부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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