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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나무 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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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9-03-20 11:39 조회 38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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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농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밝고 진지해 보였다. 사연은 제각각이겠으나 미래의 희망을 심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나무를 심는 것을 십년대계라고 한다. 묘목을 심어 숲을 만들고 열매를 따게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봄에 어머니가 평생 일구던 밭에 나무를 심을 작정이다. 언젠가는 아니 머지않아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 속에서 땅을 밟으며 살리라는 다짐의 일환이다.


얼마 전 나무 공부를 위해 곶감으로 유명한 경북 상주에 다녀왔다. 경기도 일산에서 상주까지는 꽤 먼 길이었지만 내게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니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잠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지방도로를 타고 가며 만난 괴산과 문경 일대의 산세와 풍경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따뜻한 햇살을 머금은 산과 들판에서는 새싹의 움트는 소리가 들리고 나무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푸른 수맥이 흐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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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부터 나무농장 사장님의 강의가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이미 한 시간 전부터 대여섯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 양평에서 왔다는 60대로 보이는 부부와 또 그들의 아들인 30대 청년과 인사를 나누었다. 9천여 평의 옥수수 밭으로 재미를 보고 있지만 아들의 뜻에 따라 더 경제성이 높은 작물이 무엇이 있을지 연구 중이라고 한다. 청년의 표정은 밝고 의욕에 차 있었다. 반듯한 청년이 무언가 얘기를 할 때마다 다소곳이 바라보는 부모들의 표정에서 자식을 사랑하고 든든해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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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도시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부모님과 농사를 지으며 살기로 했다는 청년은 과일나무를 심을 경우 농촌에 일손이 없어 수확이 문제라고 했다. 하루 10만 원 이상을 주어도 일손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10년 전에도 옥수수 1개가 천원이었는데 지금도 천원이라며 옥수수를 하나하나 따야하는 노동의 수고로움에 대해 얘기했다. 그의 어머니는 농촌일이 힘들지만 고향으로 돌아와 함께 사는 아들부부가 대견스럽고 같이 사는 게 기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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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가 아주 오래 전 당신과 내가 함께 농사일을 하면 좋을 거 같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무슨 말 끝에 “대학 떨어지면 어떡하죠?”라고 했는데 어머니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하고 같이 농사지으면 되지?”라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자식이 대학을 가고 대처에 나가 잘 살기를 바라면서도 이내 아들을 고향에서, 당신 곁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섭섭함에 내보이신 반응이려니 했다. 그러나 이제 세월이 흘러 돌이켜보면 같이 농사짓자던 어머니의 말씀에 상당한 진심이 담겨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30대 아들을 흐뭇하고 자애롭게 바라보던 양평의 그 어머니처럼 말이다.


나무농장 사장님의 열정적인 강의가 시작됐다. 젊은 시절부터 나무를 길렀고 실패도 여러 번 겪었다는 그 분의 철학은 독특하고 단호했다. 비료와 거름, 퇴비를 많이 주지 말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비료와 거름을 많이 주면 나무뿌리 스스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넓고 깊게 뻗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위적인 영양분이 뿌리를 강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의 나무의 지하부와 지상부의 불균형을 불러와 심한 가지치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나무들의 열매는 당도도 더 떨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자연스럽게 고난을 극복한 나무가 훨씬 더 많고 맛있는 열매로 결실을 맺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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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무를 심을 때는 충분히 물을 줘야 하지만 뿌리가 착근한 뒤에는 땅 속 수분만으로도 충분히 공급이 된다며 땅의 수분이 하늘로 날아가지 않도록 두둑을 만들어 나무를 심고 주변 땅을 부직포나 비닐로 덮으라고 가르쳤다. 그렇게 해야 뿔 뽑는 수고를 덜고 제초제를 안 써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분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를지는 모르지만 상주에서의 시간은 유익했다. 나무 농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밝고 진지해 보였다. 사연은 제각각이겠으나 미래의 희망을 심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나무를 심는 것을 십년대계라고 한다. 묘목을 심어 숲을 만들고 열매를 따게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봄에 어머니가 평생 일구던 밭에 나무를 심을 작정이다. 언젠가는 아니 머지않아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 속에서 땅을 밟으며 살리라는 다짐의 일환이다. 만물이 약동하는 봄에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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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권혁주 건국가족 편집위원

경기도 여주 출생. 여주고등학교를 나와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84학번)를 졸업했다. 1991년 기독교방송국(CBS)에 입사, 보도국 사회부와 경제부, 정치부 기자 등을 거쳐 TV뉴스 부장, 노컷뉴스 부장, 마케팅본부 2부장, CBS 경인센터장 등을 역임한 후 지난 1월 초 다시 보도국으로 복귀해 현재 정치부 선임기자(국방부 출입)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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