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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호
편집위원 컬럼 l 일감호를 바라보며 산행, 그 여유로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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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山行), 그 여유로움에 대하여


세상 일이 다 그런 듯하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해결 못할 일이 없다. 최근 정치판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막말이 난무한다. 여야가 싸우더라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달라는 지청구를 수없이 들었을 터지만 도무지 달라지지 않는다. 정치권 언어가 갈수록 거칠고 천박해지고 있는 건 그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첨예한 정치적 현안도 한 걸음 물러서 돌아보면 해법은 있게 마련이다. 집안일도, 사회생활도, 나랏일도 다 그럴 것이다.


지난 2월 하순 어느 날, 모처럼 지리산에 올랐다. 지리산은 2월 중순이 넘어서면 정상인 천왕봉을 향하는 루트는 백무동 코스와 중산리 코스만 터 놓는다. 종주코스를 비롯한 다른 루트는 산불을 우려해 4월 중순까지 전면 폐쇄한다. 아쉽지만 그 길이라도 열어준 게 고마울 뿐이다.  단조로운 코스만 열려있다 해도 이 시기 산행도 나름의 특별한 즐거움이 가득하다. 산행 들머리인 아랫 세상은 나뭇가지에 움이 트고 봄기운이 물씬 넘친다. 한데, 산 위 세상은 여전히 한 겨울이다. 정상 부근 기온은 최저 영하 10도, 체감 기온 영하 20도를 밑돈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별 세계인 셈이다. 두 계절 사이를 줄타듯 오가는 산행의 묘미는 이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다.

 

하지만 동전은 양면이 있게 마련이다. 즐거움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움도 도사리고 있다. 당장 두 계절치 옷과 방한 용품을 모두 준비해야 하고, 아이젠 등 겨울 등반 장비도 필수다. 실제 1200~1300m 고지 이상 올라서면 곳곳에 겨우내 쌓였던 눈밭이 그대로 있고, 돌계단엔 얼음이 잔뜩 끼어있다. 여기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자칫 치명적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항상 눈과 얼음 길로 이어진 것도 아니다. 햇살이 잘 드는 쪽은 맨 땅이 다 드러나 있다. 아이젠 신고 벗기를 반복하다 지치고 귀찮아지면 아예 차고 걷는다. 그러니 이중 삼중 힘이 들 수밖에…. 


설렘으로 가득한 대피소의 밤, 그 한적함이 기다려진다.


배낭의 무게 또한 천근만근이다. 용량이 꽤 큰 배낭이라도 부식에 비상식량까지 더해 터질 듯 넘쳐난다. 그걸 짊어지고 산행에 나서면 저질 체력은 금세 바닥을 내보이고 만다. 마음 같아서는 다 던져버리고 오던 길을 되돌아 가고 싶지만 그래도 알량한 자존심에 가뿐 숨을 몰아 쉬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렇게 밟는 정상은 더 달콤하고 향기롭다. 지리산을 포함해 설악산, 덕유산, 소백산 등 국립공원 명산을 찾는 재미 중 하나는 대피소 이용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정상부근 대피소는 원래 악천후 등으로 인한 산악 사고 예방을 위해 설치됐다. 말 그대로 대피소다. 하지만 산행객들이 하룻밤 몸을 누이는 장소로 인기리에 활용된 지 이미 오래다.


대피소의 밤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하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또 날이 청명한 날은 청명한대로 저마다의 멋과 낭만이 차고 넘친다. 얼큰한 찌개 한 그릇과 한 점 고기로 종일 산행에 지친 몸을 달래고, 어둠과 적막이 짙게 깔린 대피소의 밤을 만끽하는 맛에 산행을 한다는 산꾼들도 줄을 섰다.


무엇보다 대피소가 반가운 건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이번에 다녀온 지리산만 해도 고백컨대 나는 단숨에 천왕봉을 올라 그 길로 하산할 자신이 없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체력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대피소에서 하루 신세를 지고 아침에 정상 일출을 감상한 뒤 하산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렇게 일정을 짜면 산행도 한결 여유롭다. 가령 백무동 들머리에서 대피소가 있는 장터목까지는 대개 4시간을 잡고 걷는다. 하지만 나는 5시간쯤으로 넉넉히 잡고 나서는 식이다. 해 지기 전에 대피소에 도착하면 그만인데, 더 늦어지면 또 어떤가. 즐거워야 할 산행이 고행(苦行)이 돼야 할 이유는 없다.


산행하기 딱 좋은 계절, 한 걸음 쉬어가는 여유를 찾자


세상 일이 다 그런 듯하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해결 못할 일이 없다. 최근 정치판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막말이 난무한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고 하는 바람에 국가원수를 모독했다며 정치권이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 집권 여당이라고 다를 게 없다. 민주당은 나 원내대표를 청산해야 할 ‘토착왜구’라고 맞받아 쳤다. 도무지 품격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운 곳이 우리 정치판이 아닌가 싶다. 하긴 민주당이 야당시절에도 똑 같았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鬼胎)’라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그 사례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여야가 싸우더라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달라는 지청구를 수없이 들었을 터지만 도무지 달라지지 않는다. 정치권 언어가 갈수록 거칠고 천박해지고 있는 건 그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첨예한 정치적 현안도 한 걸음 물러서 돌아보면 해법은 있게 마련이다. 집안일도, 사회생활도, 나랏일도 다 그럴 것이다. 완연한 봄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 산행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지리산은 아니더라도 주변 가까운 산이라도 올라 보길 권한다. 그 과정에서 한 걸음 쉬어가는 여유를 찾는다면 일상이 풍요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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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 편집위원 -

 

건국대학교 사학과 78학번으로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쳤다. 헤럴드경제에서 정치부장과 증권부장, 사회부장 등을 거쳐, ‘기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편집국장과 논설실장 직을 역임했다. 현재 헤럴드경제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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