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굴레 속, 표현의 자유 갈구한 영원한 청춘 본문 1960년 데뷔 이후 반세기 넘게 우리를 웃고 울린 ‘영원한 스타’ 강신성일 동문이 11월 4일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남 배우였던 고인의 삶은 그 자체가 한국 영화사와 궤적을 함께해왔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후 숱한 히트작을 쏟아내며 1960, 70년대 한국 영화의 독보적인 스타로 우뚝 섰다. 주연을 맡은 작품만 507편에 이르고 조연 등으로 출연한 영화까지 합치면 600편이 넘는다. 지난해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뒤에도 각종 영화제에 참석하고, 후학 양성에 앞장서는 등 영화에 대한 열정만큼은 한결 같았다. 대종상영 화제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청룡영화상 인기남우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고인의 영결식은 영화인 장으로 11월 6일 거행됐다. 1987년 건국인의 날에서 자랑스러운 건국인상을 수상하였 으며, 총동문회 부회장을 역임 한 바 있는 강신성일 동문은 우연한 계기로 모교와 인연을 맺었다. 데뷔 후인 1962년에 ‘청춘교실’을 건국대에서 촬영한 그는 예쁜 캠퍼스와 특히 일감호의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을 뺏겨 입학을 결심했다고 건국가족 인터뷰 (2013년 10월호, 223호)에서 밝힌 바 있다. 특히 강 동문은 시인으로 등단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히 문학과 가까이 지냈으며, 제작자와 감독의 꿈을 꾸었던 만큼 우리 문학과 글을 정확히 알기 위해 건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