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강기석(정외 72)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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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8-12-20 15:16 조회 228 댓글 0본문
한국 미디어 생태계 깨끗하고 균형 잡힌 모습으로 탈바꿈 시킬 것
1977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해직과 투옥생활 등 많은 우여곡절에도 올 바른 생각과 시대에 대한 책임감으로 언론인의 정도를 걸어온 강기석 (정외 72) 동문. 2002년 경향신문 첫 직선 편집국장을 맡으며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던 그가 지난 2월 12 일 뉴스통신진흥회 신임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연합뉴스가 양적·질적 으로 언론계를 선도해나가는 국가 기간뉴스통신사로서 자리매김하도 록 역할을 다하겠다는 강 동문을 만나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언론은 소유 구조에 따라 사영언론, 공영언론으로 크게 나뉜다. 사영언론에서 다룰 수 없는 부분을 취재하는 것이 공영언론의 역할이다. 뉴스통신 진흥회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 지정된 연합뉴스사가 경영을 잘하는지, 공익에 맞는 보도를 하는지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 강기석 동문의 설명이다.
시대에 대한 책임감과 일관된 언론관으로 중책 맡아
“언론 매체의 보도 방향과 철학은 소유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합뉴스는 국고에서 지원을 받으니 언론의 사유화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재벌이나 광고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만큼 정확한 뉴스, 깊이 있는 뉴스, 흔들리지 않는 뉴스로 다른 언론사를 이끌어가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인인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강 동문은 언제나 올바른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비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대에 대한 책임감과 일관된 언론관은 10여년이 지난 뒤에도 다시 그가 중책을 맡게 된 이유일 것이다. 신문유통원 초대 원장 임기를 마친 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 재단 상임 운영 위원,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역임하고 언론의 독립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언론인 선후배들과 자유언론실천재단을 결성하는 등 현직에서 물러난 동안에도 나태해지지 않고 쉼없이 활동해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강 동문은 모교 3학년 재학 당시 외무고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유신반대 시위로 투옥생활을 했다는 이력 때문 에 3차 면접에서 낙방했다. 그 후 목 표를 선회, 재미있고 파워풀한 직업이라는 생각에 기자에 매력을 느낀 그는 1977년 12월 경향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어떤 불이익에도 당당히 맞서며 2005년 퇴사까지 30여 년간 해직과 투옥 등 우여곡절이 많은 기자생활이 었다.
연합뉴스, 언론의 공적 기능 잘 수행하도록 최대 지원
"언론 노동운동은 월급을 더 달라는 게 아닙니다. 기사를 마음먹은 대로 제대로 쓰게 해달라는 편집권에 대한 요구이지요. 노조 운동을 통해 올바른 생각과 신념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덕분에 지난 2002년 특파원과 기자들이 직선으로 뽑은 편집국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관영언론, 재벌언론 성격의 경향신문이 진보언론으로 바뀐 것도 그 시기이지요.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외국 특파원을 주요 국가에만 파견하는 사영 언론과 달리 30개가 넘는 도시에 70여 명의 특파원을 내보내고 있다.
우리 눈으로 외신을 보며 정부 주권을 지키기 위함이다. 또 한 전국 각지를 넘어 북한에 관한 뉴스, 전 세계 동포들의 뉴스 등 국민의 알권리를 신장하는 언론의 공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인력과 비용 등의 문제로 개별 언론사에서 다루기 어려운 부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한계와 고비를 극복해온 강 동문이 불편부당하고 중립적인 사실보도를 하며 언론의 공적 기능을 잘 수행하도록 관리 감독함으로써 연합뉴스가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양적·질적으로 언론계를 선도해나갈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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